<Rule No.2 '소설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법.' >
“다시 써와야 될까요?”
“아니······. 합격이야. 이정도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단 걸 알겠으니까.”
난 고개를 숙이고 나의 눈치를 살피는 소연을 안심시키며 말했다. 금방 울적한 기운을 지우려 노력하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이 글을 그대로 독자들 앞에 내보이면 표절이다 뭐다 떠들겠지······. 뭐, 이건 대놓고 복사한 습작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쓰는 것이 확실히 정석일거야.”
난 괜스레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독자들은 어떨지 몰라도. 복잡한 문제다. 약간의 해프닝이 비슷하기만 해도 조목조목 비교를 한 게시물이 올라오고, 불특정 다수를 설득해선 표절작가로 낙인찍어 버리니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학원물의 시작은 비슷비슷 할 수밖에 없어.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한정 될 수밖에 없으니까, 더욱이 주된 독자층에게 친숙한 무대인 학교가 배경이라면 ‘신학기’ 아직 서로에게 어색한 교실은 쓸 거리도 많고 자연스럽게 인물을 소개하기에도 좋으니까, 빠질 수 없는 배경이야.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한다.’ 라는 점에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니,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고. 버리기 너무.”
아깝다는 거지, 난 보조받침에 올려놓은 빙수기계를 돌리며 낙심하는 소연이의 말을 정정한다. 너도 한잔 할래? 아뇨. 독자들 앞에 내보이기 어중간하다는 것이지 습작기에 있는 그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데 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네, 쓰는데 편했어요. 자기소개를 하는 상황이니까. 캐릭터에 대한 소개도 쉽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라이트노벨을 읽으면서 심야에 불량배에게 도망친다던가? 사람들이 떠난 학교에 남아 흡혈귀 따위를 만난다던가? 하는 장면을 본적 없어?”
“있어요!”
“그런 반복적이면서도 이야기상의 테크닉이 되어버린 상황이나 법칙을 클리셰라고 해. [Boy meets girl] [Out of daily life] 같은 단어로 정의 되는, 등교나 하교 심부름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여자아이를 만난다던지, 친한 소꿉친구가 마법사라던가, 적에게서 도망치며 만난 아는 친구가 검을 들고 있다던가, 인원수가 모자라 폐부가 예정된 동아리에 심부름을 간다던가 하는 게 모두 클리셰야. 라이트노벨에서는 이런 클리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해. 이건 ‘표절이다 어떻다.’의 개념이 아니라,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도구의 개념이니까.”
어떠한 클리셰가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개념도 아니니까. 스스로 많은 작품을 읽으며 아는 수밖에 없겠지······. 선반에서 미리 식혀둔 핫 초코에 갈은 얼음을 넣는다.
“이번에 내준 과제는 그런 클리셰를 긴장감 있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는 걸 원했던 거야.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하는 방법. 길을 잃은 여자아이에게 옷을 사준다. 먹을 걸 사준다. 라면을 끓여 먹는다. 등의 극히 평범한 일상에 어떤 비일상을 섞어야 글이 재미있을까? 를 물었던 거야.”
소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글을 쓰는 것이 평소보다 쉬웠던 이유는 그런 클리셰의 좋은 예시를 벤치마킹했기 때문인거야.”
『 “만나서 반갑다, 최은영 선생님이야, 은영샘이라 불러줬으면 좋겠어. 담임은 맡는 것은 처음이지만 함께 노력하자.”
교단의 올라선 젊은 여인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국어책을 읽듯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생각보다 젊어 그녀를 재어보던 나는 그 모습에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한다는 의미인지, 젊은 선생님이 만만하다는 뜻인지 몇몇 아이가 휘파람을 불자, 교실의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우리를 진정시키려는 듯 명랑하고 쾌활한 미소를 보이며 자신이 소프트볼 고문을 맡고 있다는 것, 국내에 소프트볼 팀이 몇 안 되지만 자신은 실업팀에 속한 에이스였다는 것, 현재 소프트볼의 인원이 많지 않아 약간의 운동감각만 있다면 바로 정규 선수로 받아줄 수 있다는 것과 올해는 꼭 좋은 성적을 내겠다는 등의 얘기를 쉬지 않고 떠든 다음 더는 할 이야기가 없는지,
“그럼 각자 자기소개를 하도록 할까?”
라는 말을 꺼냈다.
뭐, 그렇고 그런 전개이고 딱히 딴죽을 걸거나 감탄을 할 상황이 아니며 놀랄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교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줄 곳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오른쪽 4분단을 시작으로 교대로 일어서며 한 명씩 일어나 이름, 출신 중학교, 취미나 특기 따위(커플이라며 염장을 지른다던가. 이상형 등을 포함하여)를 주위에만 겨우 들리는 목소리로, 혹은 넉살 좋은 웃음을 섞어 가며 점점 내 차례까지 다가왔다. 긴장된 순간이다. 당신도 알겠지?
오랫동안 생각해온 말들을 일어난 순간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마냥 쿨 한 모습을 유지하며 어찌어찌 소개를 마치고, ‘끝냈다!’ 란 해방감을 맛보며, 순간 긴장이 풀려 쓰러지듯 의자에 앉는다. 그리고 뒷자리에 앉은 여자아이가 의자를 찌익 끌며 - 당치도 않은 행동력이었다. - 일어났다.
“영등포 중학교 출신 고은초령.”
여기까지 별 무리 없었다. 목소리는 호소력이 짙었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눈에 뛸 수 있는 독특한 음색이었다. 남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다면 분명 장점이 되겠지만, 남들의 기척을 살피는 일을 한다면 고쳐야 할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 정도로 매력적인 음색이었다.
“체이탁 M-200을 사용할 때도 있지만, 주로 무게 추를 때어낸 PSG-1을 사용합니다. 중학교 때 탄도학을 전공하였고,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전입니다.”
뒤를 돌아보자 길고 검은 생머리에 헤어밴드를 하고 당당히 치켜든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단정하고 바른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과연, 이미지에 알맞은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반장이나 부반장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어쨌거나 사격술이 훌륭할 것이란 건 확고부동한 사실인 것 같다. 요인 저격을 할 수 있는 고급 저격제원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학교에서나 민군에서나 환영받을 인재라고 생각했다. 체이탁보다 PSG를 사용 한 다는 건 좀 더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임무를 선호한 다는 어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믿음직스런 동료가 생긴 것 같다. 』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초코 스므디를 한 목음 마셨다. 입부터 명치까지 차가운 얼음이 훑고 지나간다.
“소설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자주 그랬지?”
“네······. 빈 화면을 보면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설정이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그녀를 바라본다.
“정답을 구한다는 것이 언제나 옳은 방향으로 가지는 않아. 앎으로 망한다. 란 말도 있으니까. 내가 지금부터 말하는 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마. 만족하면 죽으니까.”
아직은 말해줄 만한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어쩌면 괜한 심통인지도 모르겠으니. 난 소연에게 결정을 미루며 말을 시작했다.
“‘꼬투리를 잡는다.’는 말을 알고 있어?”
“괜히 말꼬리를 잡는 다거나, 시비 거리를 만드는 것 아닌가요?”
“맞아. 내가 소설을 시작하는 방법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괜히 시비 거리를 만드는 거야.”
“말꼬리를 잡고 늘어진다고요?”
“그래, 떠오르는 발상이나 설정을 끝낸 주인공의 기본적인 속성. 예를 들면 가난하다던가? 불행하다던가? 여복이 넘친다. 같은 속성으로 처음 문장을 시작하는 거야. 토우마의 ‘으에?~~ 너무너무 불행해!!!’같은 문장 말이야.”
이야기가 길어 질 것 같다.
“또 발상은 다시 평가를 내리는 기질이 중요한데, 남들이 하는 평가를 고지곧데로 따라가지 않고 조금씩 다르게 생각하다 보면 좋은 발상이 떠오를 거야. '타락한 천사들이 날개를 버리는 곳은 어딜까?' 같은 물음 같은거 말야.”
이야기가 길어 질 거라 말하자, 녀석이 의자를 가져와 내 옆에 앉는다. 오래 서있어서 다리가 아픈지 계속 무릎을 굽혔다 폈다 했다.
“그리곤 왜? 어째서? 그래서? 등의 물음을 던져가며 뒤 문장을 이어가는 거야. 위의 예시를 왜? 라 자문하고 ‘심야에 불량배에게 도망치고 있기 때문에 불행하다.’ 라고 자답하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가는 불량배가 위험해 보여서’등의 꼬리를 무는 이유를 서술하는 거야”
작은 수첩을 꺼내 든 녀석은 꼬투리 잡기, 자문자답 등을 적으며 내 말에 눈을 빛냈다.
“그렇게 꼬리를 잡으며 이유와 목적이 확실한 사건을 구성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적으며 소설을 진행하는 거야. 그렇게 초고를 적을 때는 플롯을 따른다던가, 묘사나 구성이 치밀할 필요도 없고, 관념적이지 않을 이유도 없어. 기분적으로 분량을 늘리는데 중점을 두고 클리셰를 사용하는데도 주저해서는 안 돼.”
고등학교 문학시간이면 가끔 들을 수 있었던 생각이 나는 것을 써라. 등과 비슷한 말이겠지. 누구나 알고 있고, 말하기는 더 쉽지만 실천을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법이다. 그냥 생각이 나는 것을 쓰면 안 되니까. 그건 망상을 설명해 둔 일기일 뿐이니 말이다.
“당연히 자문자답한 것을 그대로 적거나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적으면 안 돼. 흔히들 말하는 규칙이 있는데, 절대적인 건 아니야.”
1. 작가가 좋아할 행동이 아니라
작품 속 등장인물이 할 만한 행동과 말을 적는다.
2. 경우의 가짓수는 언제나 3갈래.를 기본으로 삼는다.
3. 쓴 글을 지우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이런 규칙이나 법칙 같은 걸 말하는 건 규칙에 메여있으란 소리가 아냐. 진정한 예술가는 법칙을 파괴하는 것에 있다 하니까. 우연의 효과를 무시하는 건 더더욱 안 되고. 그렇지만 알아야 한다고, 법칙을 파괴하는 일은 법칙을 습득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의 일이란 것을.”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말을 하거나 약간의 잔소리를 하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니 아는지 모르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마음 편하겠지, 이해했다고 해도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실패한 다음의 일이니까.
“그렇게 글을 시작했다면, 끝내는 일은 어렵지 않아. 글을 완성하지 못하겠단 투정은 시작도 못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지. 하나의 사건이 마무리 되거나. 아님 등장인물을 모두 죽여버리기라도 하면 소설은 끝나. 후속권은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하고. 중요한 것은 초고를 쓰며 드는 생각이나 이야기거리를 모두 적으려 하면 안되고 후속권도 있으니 현재에 집중하잔 생각으로 끝을 지어.”
“그렇구나..”
“이미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해본 경험이 있으니 너에겐 크게 어렵지 않을거야.”
그렇게 잠시 숨을 고르며 뜸을 들인다.
“초고를 작성할 때는 주위에 누구도 없어. 종이와 나. 이 둘의 원색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 그래야 슬럼프에 빠지지 않아. 모든 이론은 퇴고를 할 때 발휘되는 것이니까. 분량은 처음 생각한 양의 1.5배 정도를 쓰고.”
“초고와의 차이가 그렇게 큰가요?.”
“숙련된 작가가 쓴 글은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쓰면서 어느정도 퇴고 과정을 거치니까. 하지만 습작기에 있는 지망생의 경우는 큰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써놓는 경우가 많으니까. 퇴고는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소설의 주제와 제제에 필요 없는 것은 죄다 빼버리는 것이 가장 처음이니까.”
“네.”
“글을 잘쓰는 것은 초고를 잘쓰는 것이 아냐. 잘 고치는 사람이 잘쓰는 사람이야. 그리고 고치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어쩔 수 없이 하나의 눈이란 건 편협된 시선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 원고를 서랍에 넣고 1주일이나 3주일 쟁여놓고 나중에 퇴고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주위에 너의 글을 옳게 봐줄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하는 궁여지책이야.”
또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보며 냉장고를 향해 바퀴를 굴린다. 글은 분명 잘써지는데 살이 찔 것 같단 말이지. 걷지는 않고 앉아서 지내니까.. 난 먹으려던 생크림 빵을 내려놓고 물을 한잔 따른다. 너도 한잔 마실거니? 아뇨.. 괜찮습니다. 녀석은 수첩에 무엇인가를 계속 적고 있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한 뒤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 운이 닿으면 너처럼 작가와 집필실을 같이 쓸 수도 있고 편집자라는 자신의 글을 올바르게 봐주는 훌륭한 독자도 생기니까. 너의 글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이 너에게 손을 내미니까.”
“저도,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너처럼 편집자들이 따로 관리하는 2군들을 좋게 생각하지도 않아. 기회서만을 너무나 중요시하는 편집자들도 있고, 그래서 원고 작성을 쉽게 보는 이들도 있으니까. 그냥 인터넷에 연재하는 사람과 자신은 다르다며 무시하는 저질들은 치워두고라도 말이지.”
“네.”
“처음 짜둔 계획으로 흘러가는 글은 없다는 걸 생각해둬.. 글은 살아있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난 그녀의 노트북을 다시 건내고 편집자가 보내온 원고뭉치를 꺼낸다. 오늘은 풋풋한 글들을 많이 읽을 것 같다. 문장이나, 구성은 조밀하지 못해도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치는 글. 부족한걸 알면서도 헤메는 길이 아닌 길을 걷는 커다란 발자국들을 훔쳐보게 될 것 같다. 소연이는 다시 필사를 시작했다. 소설이 아니라. 기행문이다. 장문주 작가의 기행문들. 펜으로 옮겨 쓰고 다시 컴퓨터로 옮긴다.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오늘은 마법의 문이 열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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